샬롬, 주안에서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이번 만남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주셨는지 전하려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참여하시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체험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1. 왜 은혜는 지속되지 않을까요?
제가 이 과정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성도들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교회에서 받은 은혜가 교회 밖에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도 잠시 뿐이고, 또 마음과 정신을 다루는 책을 읽어도 삶의 변화나 기쁨은 지속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 심리치료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도 하고, 교회 안팎의 제자훈련, 치유집회, 큐티, 부부학교, 소그룹 모임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나 일상에서 겪고 있는 삶의 문제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크고 작은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거나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설교가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성도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설교가 사람을 변화 시키지 못한다고 말하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2. 문제의 핵심: '깨달음'의 한계
저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교회 생활을 지켜보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고 깨달으면’ 믿음이 성장하고 삶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또는 다윗이나 요셉, 다니엘의 훌륭한 점을 찾아 적용하면 변화 될 것이라고 믿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해도, 삶을 점검해보면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전에 미국 선교사가 1906년에 세운 교회에 설교하러 간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어려운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성도들이 예배에서 은혜를 받아도 그 지속 시간이 너무 짧다는 말을 듣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타이레놀은 약효가 4시간은 유지 되는데, 설교는 오히려 마음을 더 힘들게 하거나 은혜가 몇 분이나 지속 되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은 주일설교로 충분하고, 교리교육이나 제자양육, 성경공부, 큐티 등을 통해서도 삶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진단해 보면 논리적인 설교에 지적인 동의나 감동을 받은 것일 뿐, 저마다 변하지 않은 영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 깨닫게 하는 것만 목표로 삼으면 변화는 한계에 이릅니다.
사람은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거나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깨닫는 과정은 필요하나 깨닫기만 해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3. 진정한 해결책: '힘과 은혜'를 공급받는 삶
성경을 잘 정리한 교리나 깨달음은 그 자체로만 보면 율법과 같습니다. 설교자가 성경에서 교리와 교훈을 찾아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만 가르친다면 결국 율법이 되고 맙니다. 왜 율법이 될까요?
아무리 말씀을 깨달았다 해도 사람에게는 말씀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힘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나 교훈만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면 성도들이 죄책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이나 교리와 교훈등 깨달음만 제공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킬 힘과 은혜도 함께 제공해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도 지키지 못할 율법만 주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도 함께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일로 이제 나는 어떤 존재가 되었으며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과 열심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닌 복음을 믿고 의지함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 참여하시면 과거의 습관이 중단되거나 점점 무력화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죄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는 바울 사도의 은유적 표현이 삶의 실제가 될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4. 관점의 전환: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감동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깨달음, 교훈, 지식, 헌신, 봉사 등)만 전달한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만 가르치기 때문에 율법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합니다. 율법은 그저 죄를 깨닫게 할 뿐입니다. (롬 3:20)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먼저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찾은 복음(말씀)을 사람들의 고민과 문제에 연결 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제 진정한 회복과 변화를 원한다면 깨달음과 교훈만 찾으려는 종교 생활에서 하루 속히 빠져나와야 합니다. 사람은 율법을 따름으로 의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의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갈 3:11)
복음학교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사람의 힘이나 율법을 깨달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첫째,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닌,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전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 교육의 방향을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 깨닫게 하는 ‘인식론’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경험하게 하는 ‘존재론’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인식론을 넘어 존재론’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더 이상 깨달음의 종교가 아닙니다.